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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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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늘의 어원과 역사/유래
1. 마늘의 학명

마늘의 학명은 마늘의 냄새성분에서 유래된 알리움 사티붐(allium sativum)이다. 알리움이란 냄새를 의미하는 말(olere)에서 유래하였으며, 사티붐이란 경작(cultivated)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영어로 마늘을 의미하는 갈릭(garlic)이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갈릭의 갈(gar)은 뾰족한 창이나 칼(spear)을 뜻하며 릭(lic)은 부추과의 식물을 뜻하는 영어 리크(leek)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 마늘의 어원
  • - 산(蒜)이라고도 한다. 마늘의 어원은 몽골어 만끼르(manggir)에서 gg가 탈락된 마닐(manir) → 마ゅ → 마늘의 과정을 겪은 것으로 추론된다.
  • - 우리나라 음식에 대해 소개한 19세기 고서 《명물기략(名物紀略)》에서는 “맛이 매우 날하다 하여 맹랄(猛辣) → 마랄 → 마늘이 되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 - 중국 명(明)나라 때의 본초학자(本草學者) 이시진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 “산에서 나는 마늘을 산산(山蒜), 들에서 나는 것을 야산, 재배한 것을 산(蒜)”이라 하였다. 후에 서역에서 톨이 굵은 산(大蒜)이 들어오게 되어 전부터 있었던 산을 소산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 선조 30년(1597) 어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서는 “대산을 마늘, 소산을 족지, 야산을 달랑괴”로 구분하였다.
3. 마늘의 역사
  • - 마늘은 고대 이집트ㆍ그리스 시대부터 재배되어 인도ㆍ중국ㆍ한국ㆍ아프리카의 각지에 전파되었다. 중국에는 BC 2세기경에 인도로부터 도입되었다고 한다
  • - 우리나라는《삼국유사》에 나올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재배 역사가 매우 오래 된 듯하다.
  • - 현재 마늘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미국 캘리포니아, 아시아의 한국ㆍ중국ㆍ일본ㆍ인도를 비롯하여 서부아시아 지역 그리고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4. 유래

- 마늘을 일명 "호"라고도 불러지고 있는 그 유래는 중국 한나라 때 "장건"이란 사람이 당시의 서역, 지금의 인도지방으로부터 도입했다고 해서 장건의 호를 칭하여 그렇게 불 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재배기원이나 도입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으나 단군 신화(三國遺事)에도 나올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 「立秋後亥日 蒜園祭後農」이라는 기 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늘의 이용과 재배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강장, 강정(强壯,强精)의 대표적 식물(植物)인 마늘은 동양의 옛 영지(英知)와 과학이 공 명하는 자연식품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악하고 흉한 마귀를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몽고어 "manggir"에서 ? 마닐 ? 마날 ? 마늘로 어형의 변천과정을 밟았 다고 한다.

고조선의 단군왕조시대 쑥과 마늘은 기초적 약용 식물이었다는 내용이 사화로도 전해 지듯이 즉 하늘이 준 영약(靈藥)으로 여겨 왔다. 마늘의 독특한 향기가 악귀나 액(厄)을 쫓는 힘을 가졌다는 현대적 의미는 곰팡이, 대장균, 포도상구균을 살균하고 강한 해독(解 毒) 능력이 있다는 뜻이며 종교적 차원에서 마늘의 상징은 그것을 먹는 사람의 정력을 강화 시킨다는 약리작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불교에서도 마늘을 익혀먹으면 성욕이 발동하고 날것으로 먹으면 마음속에 열기가 생긴다고 하여 마늘은 수도과정에서 터부시 하였고 도교에서도 마늘은 성욕을 강화 시켜 수련(修練)을 방해한다고 한다.

당나라시대 [손사막]이라는 약성(藥聖)은 [생마늘을 많이 먹으면 성욕이 왕성해진다]고 하였으며 마늘에 물을 붓고 끓여 크림을 만들어 꿀과 섞어 오랜 동안 조금씩 계속 먹으 면 얼굴에 잔주름이 생기지 않고 늙어서도 피부가 고와 진다는 것이 옛 궁중 여인들의 격언(格言) 이였다. 또 다른 방법은 꿀 한 컵에 마늘 6통을 강판에 갈아 넣고 같이 혼합 한 후 밀봉해서 햇볕이 안드는 어두운 곳에 2~3개월쯤 두었다가 사용하는데 목욕 전 얼 굴에 바르고 욕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깨끗이 닦아낸다.

옛 구급방에서 코피가 그치지 않을 때 마늘을 찧어 발바닥중심(움푹 들어간 중앙)에 붙 이면 출혈이 멎는다 했으며 역대 한국의 손 기정, 서 윤복같은 마라톤 왕들이 마늘을 즐 겨먹었다는 소문이 나돌고부터 일본을 위시한 세계 마라토너들이 마늘 먹기에 열을 올렸다는 일화가 있듯이 피로회복, 기력강화, 체력향상에 마늘은 왕좌에 군림하고 있다.

조선시대 화공(화가)들의 그림 중에 백물도(백가지 물건에 여러 가지 초화(草花)와 과일 등 불로장수와 아들 많이 낳기 등의 상징을 그려넣음)가 있는데 그 중 마늘은 쪽이 6개 이상이어서 다남(多男)을 의미했으며 마늘의 여섯 쪽은 천지 섯방향(상하동서남북)을 의 미하는 것으로 고조선에서 숭상(崇尙)하여 세계를 향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념의 상징물 로 여겼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막대한 인력동원이 요구되었는데 석공(石工)들의 엄청난 힘의 원천이 마늘이 아니었던가 연상하게 되는데 유대 탈무드에 마늘은 천국에서 육성, 재배되었던 것이 타락한 천사(사탄)가 지상에 추방될 때 마늘을 지참하는 것을 잊지 않았 기에 지상에 퍼졌다고 했고, 팔레스티나의 전설에서는 마늘을 에덴동산 속의 생명나무와 연결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개국 마늘사화와 매우 비슷한 내용이 마늘전설로서 세계각국 에 공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원전 3200~2780년 이집트 왕조시대에 양파와 더불어 식용되어 왔다는 사실이 당시의 분묘 벽면에 기재되어 있으며 헤로도트스에 의하면 기원전 3733년에 완성한 카이로의 서남쪽에 위치한 '기제'대 피라미드를 건설한 노동자들의 식사는 주로 양파와 마늘 등으 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약 1358년의 스타카멘의 묘 속에서도 수개의 마늘이 발견되었다. 이집트의 僧侶 는 신의 공물로서 양파와 마늘을 제단에 제공하였다.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후 사탄이 에덴 공원을 밟을 때 왼쪽발이 닫은 곳에 마늘이 나고, 우측 발이 닫는 곳에 양파가 나 왔다고 하는 이스람교의 전설도 있으며 바빌론의 국왕 매로다구 파라단Ⅱ세는 마당에 마 늘과 양파 등을 길렀다고 한다.

옛날 로마의 의사 프리니에 의하여 서술된 '박물학지'에는 마늘이 기재되어있어, 치통과 기침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약효가 서술되어있다. 기원전 400년경 Hipocrates는 마 늘의 약효를 인정하였고 특히, 약 500년 후에 디오스코리터스는 이뇨제로서 마늘을 勸奬 하였다. 기원전 4세기에 활약한 알렉산드 대왕의 군대는 마늘을 매일 먹어서 연전연승 하였다고 한다. 성지 에루살렘의 전쟁 십자군의 일원으로서 대활약을 한 이탈리아 군단 의 장병들은 매일 마늘 1조각을 먹어서 용기가 왕성한 기상을 배양하였다고 한다. 그러 나, 로마의 상류계급에서는 卑俗한 식물로서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또 마늘은 1722년 마르세유에서 pest의 예방에 사용된 유명한 약(Vinegar of the Four Thieves)의 주요 성분이 기도 하였다.

인도에서는 마늘이 치질, 피부염, 류마티즘, 복통, 식욕감퇴, 기침 등의 치료를 위하여 사용되었고 Hipocrates, Paracelsus, Lonicerus등도 의약품으로서 마늘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이뇨제, 폐렴 및 화농성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하였다.

1916년(제1차 세계대전) 영국 육군에서는 부상한 상처의 화농을 방지하는 약으로 마늘 즙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단군전설에 나오는 마늘說話(三國遺事紀異古朝 鮮條)는 고려하지 않아도 三國史記新羅本紀에 '蒜'자가 낀 지명이 나오며, 鄕約救急方의 大蒜項 이것은 우리말 마ㄴㆍㄹㆍ이고 맛이 辛溫하며 有毒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簡易壁瘟方에서도 五辛에 마늘(마ㄴㆍㄹㆍ)을 포함시켰고, 동의보감에서는 마늘을 3종류 로 나누어 大蒜(마늘)•小蒜(족지) •野蒜(달랑피)라 하였는데, 족지는 개성지방에서 재배되 었던 장신마늘 또는 쉰쪽마늘이라 하여 일반 마늘과 구별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허균이 지은 屠門大嚼에서는 마늘은 영월에서 재배되는 것이 가장 좋고 먹어도 薰氣(마늘냄새) 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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